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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육연원민
작성일 26-08-27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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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활동한 세계적인 건축가 유동룡(일본명 이타미 준)의 딸, 유이화가 설계한 칠곡의 카페 ‘시호재(時弧齋)&시차(時差)’. 정원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마주 보고 있는 건축물이 ‘시차’다. 사진 위쪽에 저택 형태의 집 ‘시호재’가 있다. 작은 사진은 건축물 시차의 안쪽 벽.
경북 칠곡은 여행의 들뜬 기분과 잘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이 고을 이름 앞에는 늘 ‘전쟁’이 붙는다. 낙동강 방어선. 더는 물러설 수 없어 55일을 버틴 땅. 다부동 골짜기에서만 1만 명이 넘는 목숨이 스러졌으니 그동안 ‘칠곡을 여행한다’는 건, 대개 전쟁의 자취를 좇아 위령탑과 기념관을 도는 일이었다. 끝내 버텨내서 이겼다고 해도, 무너지고 스러진 것의 자취는 늘 무겁고 엄숙하다. 전쟁은 비극이다. 기적적인 승전, 혹은 신화 같은 영웅담으로도 덮을 수 없다. 이기든 지든 전쟁은, 거기 휘말린 이들에겐 아비규환의 지옥이었을 테니까.
칠곡에 가서 이번에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이 지나간 이후를 보았다. 부서진 땅에 다시 세운 것들을 찾아가다 꺼내 들게 된 건 ‘건축’이었다. 칠곡 왜관읍 반경 몇 ㎞ 안에 종전 이후부터 최근까지 지어진 인상적인 건축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공교롭게 그 건축을 주도한 이들이 모두 ‘경계의 땅’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조선으로 건너온 프랑스 신부, 만주에서 추방된 독일 신부, 재일교포 건축가의 딸, 그리고 스스로 경계 밖의 관。을 자처하는 건축가까지…. 칠곡에 가서 이들의 행적을 따라 그들이 지은 건축, 그리고 그 건축이 지향하고자 했던 것을 살펴봤다.
왜관수도원 마당에 있는 성 베네딕도 상.
# 시차(時差), 바깥과 다른 시간
칠곡 석적읍에 매력적인 건축이 있다. 석적읍은 인근에 관광지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곳이었는데, 최근에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찾아오는 외지인이 적지 않다. 3년 전 시골 마을과 논 사이에 들어선 카페 때문이다. 카페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건 커피가 아니라, 건축으로 구현해낸 매혹적인 공간의 미감이다. 독특한 동선이나 빛과 그늘, 재질감 등의 건축적 요소가 정서적 몰입감과 미학적 자극으로 이어진다.
카페가 목적지가 되는 여행은, 사실 개인적으로 그다지 탐탁하지 않다. 하지만 여기만큼은 예외다. 여행으로 가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건축이 보여주는 특별한 미감과 기분 좋은 느낌 덕분이다. 좋은 건축은, 좋은 여행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카페’라고 썼지만 여기는 사실 단순한 카페는 아니다. 개인미술관이자 게스트하우스를 겸비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아, 그러기 전에 ‘건축주의 꿈이 담긴 집’이기도 하다. 이런 복잡한 사정은 어디까지나 건축주나 건축가의 것. 손님들은 여기를 그냥 ‘근사한 카페’로 소비한다.
카페의 이름은 둘이다. 시호재(時弧齋)&시차(時差). 시호재는 ‘시간을 얹는 활의 집’이라는 뜻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쉼 없이 날아온 인생이, 다시 활에 얹혀 방향을 겨누는 동안 여유를 갖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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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차는 말 그대로 바깥과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시호재가 ‘활의 집’이란 공간에 붙여준 이름이라면 시차는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명명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여기서만큼은 저마다 느린 시간을 보내라는 뜻이다. 시호재는 공간이고, 시차는 시간. 둘을 합치면 시공간을 아우르는 셈이다.
문화영성센터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는 모습.
# 예측 불가의 공간이 주는 매력
건축은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산책로를 따라 입구로 들어서면 둥근 성벽 안으로 들어선 느낌의 잔디정원 마당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유연한 타원형 곡선의 건축물 두 동. 흡사 촛불을 지키려고 오므린 두 손의 형상을 닮았다. 왼쪽 손바닥이 메인 건물이고, 오른쪽 손바닥이 갤러리 건물이다. 이 두 개 건물이 시차다. 시호재는 그 위쪽에 있는 저택인데, 세 개 건물 모두 카페로 쓰인다.
카페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 농가와 논둑길 사이에 있다. 누추한 농촌의 일상 공간 한복판에 세련된 미감의 현대건축이 파고들어 왔지만,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마을로 들어온 현대건축은 높이 짓지도, 몸집을 부풀리지도 않았다. 오래된 일상을 무시하거나 얕보지 않는다는 얘기. 위압적이거나 무례하지도 않다. 뭐 그렇다고 시골 마을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는 얘기까진 아니다. 공간은 그저 ‘차분하게’ 구분된다.
시호재&시차는 건축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도대체 가늠할 수 없다. 건축의 곡선과 직선이 그려내는 미감이 입체적이라서다. 서 있는 자리와 시선의 방향에 따라 공간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고개를 살짝 돌리거나, 몇 걸음만 더 가도 경관이 확 바뀐다.
건축의 전모가 직관적으로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으니, 공간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게 된다. 예측을 포기하면 남는 건 ‘기대’다. 여기로 가면 어디가 나올지, 이 길은 어디로 연결이 되는지, 이 문 뒤에 어떤 공간이 숨어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모퉁이를 돌거나 문을 열 때마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로 흥분된다. 좋은 건축의 조건 중 하나가 ‘모든 것을 한 번에 보여 주지 않는 것’이라던가. 좋은 건축을 볼 때의 두근거림은, 낯선 곳을 여행할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의 흥분과 어쩐지 닮았다.
# 딸이 이은 이타미 준의 건축적 유산
시호재&시차를 지은 건축가는 유이화다. 그의 이름 앞에 늘 달라붙는 수식이 있다. ‘이타미 준의 딸’. 유이화는 재일교포 2세 유동룡(일본명 이타미 준·1937∼2011)의 장녀다. 일본에서 활동했던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은 지역의 고유한 풍토를 건축에 담아내는 걸로 유명했던 거장이었다.
평생 한국 국적을 유지하며 일본에서 활동했던 유동룡은 말년에 제주에 자연과 어우러지는 걸작 건축물을 여럿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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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풍·석(水·風·石) 미술관 시리즈와 포도호텔, 방주교회 등이다. 아버지와 같이 건축가의 길을 걷던 유이화는 유동룡이 서울사무소를 연 2002년부터 타계한 2011년까지 함께 일했다.
유동룡이 타계한 뒤 유이화는, 제주에 아버지를 기리는 ‘유동룡 미술관’을 설계하고 지었다. 아버지의 건축적 유산이 딸에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유이화의 건축 앞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건 이타미 준이 제주에 남긴 ‘풍(風)’미술관이었다. 건축물이 부드럽게 휘어진 것도 비슷했고, 칼집을 내듯 마무리한 외벽도 닮았다.
이타미 준의 풍미술관은 ‘바람 소리를 담은’ 기발한 건축이다. 제주 중산간의 거센 바람이 건축물의 빗살 같은 틈 사이로 지나가며 만드는 소리를 잡아 건축물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바람을 건축물에 끌어들여 소리로 들려주는 발상이 천재적이다.
딸 유이화의 시호재는 바람 대신 화살을 얹었다. 화살은 형상이 아닌 마음이다.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건축에 불어넣었다면 딸이 건축에 담아낸 건 무엇인가를 새로 겨눌 때의 마음이다.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의 뒤쪽 모습.
# 최고의 건축가가 소명으로 지은 집
다음에 둘러볼 건축은, 칠곡 왜관의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있다. 본래 수도원은 서울 혜화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는데 일제강。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함경도로 갔다가 1952년에 왜관으로 옮겨왔다. 함경도에 있던 수도원이 1949년 공산정권에 의해 폐쇄되자 쫓겨온 수도사들이 전쟁 의 와중에 남쪽으로 내려와 칠곡 왜관에 수도원을 지은 것이다.
수도원이라면 흔히 상상하는 게 ‘굳게 닫힌 문’이다.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의 집. 높은 담과 두꺼운 문, 바깥사람을 들일 수 없는 규율…. 하지만 왜관수도원은 그렇지 않다. 문은 늘 열려 있고 누구나 발을 들일 수 있다. 마당을 가로질러도 되고, 성당에 들어가 앉아 있어도 된다. 수도원은 정숙하고 규율은 엄격하지만, 방문객에게까지 격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2024년 5월 왜관수도원에 새로운 건물이 지어졌다. ‘피정의 집’으로 쓰이는 문화영성센터다. 피정(避靜)은 세상의 번잡함을 떠나 고요하게 마음을 지킨다는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줄임말. 일상생활에서 잠깐 벗어나 묵상과 침묵 기도를 하는 일종의 종교적인 수련을 말한다. 사찰에서 운영하는 ‘템플스테이’와 유사하다.
문화영성센터는 건축가 승효상이 지었다. ‘인간과 도시, 그리고 시대의 사유를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는, 당대의 최고 건축가 중 한 명이다. 개신교 신자 승효상과 가톨릭 수도원을 이어준 건 ‘수도원기행’을 쓴 작가 공지영이었다. 공지영의 소개로 수도원을 방문한 승효상은, 수도자들의 청빈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보고 감명받았다. 승효상이 수도원 건축을 의뢰받은 건 마침 수도원을 순례하고 쓴 책 ‘묵상’이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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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자신에게 맡겨진 피정의 집 건축을 ‘소명’처럼 여겼던 이유다.
# ‘경계 위의 집’이 지닌 표정
승효상이 설계한 문화영성센터의 외관은, 수도원 안쪽에서 보면 좀 실망스럽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보여주는 건 덤덤한 절제다. 객실 63개를 들여놓은 네모반듯한 4층짜리 건물은, 마치 도시의 오피스텔처럼 보인다. 성령 충만한 파격에 대한 기대를 단번에 배신한다.
건축물의 진짜 표정은 바깥, 그러니까 뒤쪽에 숨어 있다. 큰길과 맞닿은 건물 뒤편을 긴 콘크리트 벽으로 세웠다. 세상과의 단절을 말하는 듯하지만 벽에 좁고 기다란 틈이 있어 그 사이로 햇빛과 바깥 풍경이 새어든다. 닫긴 했으되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는 의미. 건축가의 도화지는 뒤쪽이다. 그쪽에 작은 정원이 있고, 층마다 기도소가 있으며, 건물 바깥으로 빼낸 계단이 보여주는 선이 있고, 빛이 그려내는 그림이 있다.
승효상은 이 집을 ‘경계 위의 집’이라고 규정했다. 수도원의 장소성을 ‘세상의 경계 밖’에서 찾았다는 의미다. 수도원의 하루는 오전 5시 ‘독서기도’로 시작해 오후 8시 ‘대침묵’으로 닫힌다. 방은 수도자의 방을 닮았다. 침대와 옷장, 그리고 성경 놓을 책상이 전부다.
문화영성센터에는 객실 말고도 강당과 회의실, 명상실, 대강당 등이 있다. 인상적이었던 건 경당이었다. 높은 경당 천장의 한쪽으로 빛이 축복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감탄을 자아낸 건 은은한 포도주 빛으로 빛나는 감실(龕室)이었다. 감실은 미사 후 남은 성체를 보관해두는 곳. 성체는 곧 ‘예수님의 몸’이니 감실은 그만큼 소중한 공간이다. 감실의 은은한 빛은 조명이 아니라 감실 안쪽에 구멍을 내서 끌고 들어온 빛이다. 빛이 감실 벽에 칠해진 색감에 물들어 형언할 수 없는 은은한 색감을 만들어냈다.
왜관수도원 문화영성센터 회의실 벽에 전시한 망치.
# 베네딕도의 별을 보는 곳
경당 벽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걸려 있다.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무덤에 묻히기까지, 넘어지고 또 넘어지며 걸었던 길을 그린 그림이다. 이 액자에는 사연이 있다. 한때 이곳에 몸담았던 이가 수도원을 떠나며 몰래 가지고 나갔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양심에 걸려 되돌려 보낸 것이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수사의 표정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다. 이 공동체가 ‘사람의 실수’를 어떻게 다루는지, 그 표정이 말해줬다.
문화영성센터의 회의실 벽에는 수백 자루의 망치가 전시돼 있다. 강원도에서 생태운동을 해온 이가 평생 모은 것이라고 했다. 그가 천주교 생태위원장을 맡고 있던 대수도원장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소중하게 모아온 망치를 드릴 테니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디어를 낸 건 승효상이었다. 유리장에 고이 넣어두는 대신, 사람들이 드나드는 방의 벽에 통째로 걸었다.
베네딕도회의 삶에서 기도 다음으로 중요한 게 노동이다. 수도원의 모든 가구는 수사들이 직접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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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소시지도 기도하는 이들의 노동으로 나온다. 베네딕도회의 계명 중 하나가 ‘기도하고 일하라’다. 피정의 집 회의실에 망치를 걸어놓은 뜻이다.
4층 옥외공간인 하늘 성당에서는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곳에는 고깔 모양의 첨탑이 있는데 첨탑 안쪽을 올려다보면 작은 창을 통과한 빛살이 사방으로 뻗는다. 건축가가 만들어낸 빛의 산란을 수도원의 수사들은 ‘베네딕도의 별’이라 부른다.
붉은 벽돌로 지은 왜관수도원 초공예실 뒤로 구 왜관성당이 있다. 그 뒤편의 현대식 건물이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문화영성센터다.
#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이야기
문화영성센터와 관련한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또 있다. 문화영성센터는, 원래 승효상이 대구 군위의 사유원(思惟園)에 지으려던 것이었다. 사유원은 유재성 태창철강 회장이 40년간 모은 노거수와 건축으로 일군 수목원. 25년 지기인 유 회장과 승효상은 사유원을 함께 만들다시피 했다. 사유원이라는 이름도 두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함께 지은 것이다.
승효상은 사유원에 지을 호텔을 설계해뒀는데 자금 사정으로 착공이 미뤄졌다. 그사이 왜관수도원에 새 피정의 집이 필요해졌다. 승효상이 사유원 호텔의 밑그림을 ‘수도원에 쓰겠다’고 하자, 유 회장은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수목원의 숙소가 될 뻔했던 건축이 수도원의 피정 공간이 된 사연이다.
인연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도원은 승효상에게 수도원 대성전 앞의 ‘수도자 쉼터 겸 성물방’의 설계도 의뢰했는데, 예산 부족으로 공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승효상이 이런 사실을 전하자 유 회장은 사비를 털어 건축비를 댔다.
유 회장의 호의에 수도원도 가만있지 않았다. 보답으로 문화영성센터와 붙어 있는 옛 기숙사 건물인 마오로관에다 유 회장의 장인을 기리는 홀을 만들었다. 유 회장 장인의 이름은 김익진. 해방 무렵 물려받은 재산을 소작농에게 나눠주고 가톨릭에 귀의해 청빈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유 회장은 사유원에도 그를 기리는 공간을 만들었다.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당이라 불리는 경당 ‘내심낙원(內心樂園)’이다.
#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건축
유이화, 이타미 준, 승효상, 유재성…. 그리고 기억해야 할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왜관수도원에 머물며 죽을 때까지 성당과 건축물 180여 채를 지은 독일인 신부 알빈 슈미트다. 왜관에는 1966년 그가 지은 왜관성당이 있다. 신도가 급격히 늘면서 수도원 안에 있던, 프랑스 출신의 빅토르 루이 프와넬 신부가 지은 구 왜관성당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수도원 바깥에 새로 지은 성당이다.
슈미트 신부가 지은 왜관성당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건물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바티칸공의회는 로마가톨릭 교회가 시대변화에 응답하기 위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었던 회의. 2차 공의회가 막을 내린 게 1965년이니, 문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 정신이 왜관성당의 벽돌로 번역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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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의회가 교회에 요구했던 건 한마디로 ‘신자에게 교회를 돌려주라’는 것이었다. 그 요구는 왜관성당에서 충실하게 건축으로 구현됐다. 가장 큰 변화는 감실의 자리다. 성체를 모시는 감실은 오래도록 성당 정중앙, 제대 위에 놓였다. 그러나 슈미트 신부는 감실을 옆으로 물렸다. 대신 제대를 신도 쪽으로 끌어당겨 사제와 신자 사이를 좁혔다. 중심을 비우고 그 자리에 ‘사람’을 놓은 것이다.
놀라운 건 슈미트 신부가 공의회가 열리기 이전에 이미 사제가 신도를 바라보며 미사를 드리는 성당을 설계했다는 것이다. 공의회 이전까지 미사 때 사제는 신도를 마주 보지 않았다. 등 뒤에 신도들을 두고 제대가 있는 벽을 향해 섰다. 그런데 슈미트 신부는 1942년, 만주의 돈화성당을 설계하면서 제대를 벽에서 떼어내 사제와 신자가 마주 보게 했다. 공의회보다 스무 해쯤 앞선 시기다.
1966년 독일 출신인 알빈 슈미트 신부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구현해 지은 왜관성당 내부.
# 경계의 땅에 마음으로 짓다
슈미트 신부의 이력은 한 편의 드라마다. 독일 뮌헨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수도원에 들어간 그는 1937년 만주 북간도로 파견됐다. 그곳에서 성당 몇 채를 지었으나 1946년 공산군에 체포돼 감옥살이를 했고 1949년 독일로 추방됐다. 돌아간 고국에서 그는 성당 설계를 맡지 못했다. 건축 개념이 너무 혁신적이라는 이유로 바로크 양식을 옹호하던 수도원 책임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1961년 한국에 와 왜관수도원에서 머물던 그는, 1978년 세상을 뜰 때까지 180채가 넘는 성당과 가톨릭 건축물을 지었다. 성당을 짓는 그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김천성당을 설계할 때는 담장을 아예 없앴고, 마당은 아랫마을 사람들의 통로로 쓰도록 두었다. 그는 늘 정면 외관보다 내부 공간이 중요하다고 했고, 건물 자체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왜관성당은 지은이의 그런 마음을 보는 자리다. ‘좋은 건축’의 최고의 질료는 ‘마음’이다. 칠곡에서 본 집들이 그랬다. 화살을 겨눌 때의 마음을 담은 집도, 벽을 세우되 틈을 남겨둔 집도, 감실을 옆으로 물려 그 자리에 사람을 앉힌 집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집을 지은 이들은 하나같이 경계의 인물들이었다.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서지 못했던 아버지를 둔 건축가, 이국땅에서 핍박받던 푸른 눈의 신부, 건축적 자아를 ‘경계 밖의 관.’에서 찾는 건축가까지…. 그러고 보면 그들의 건축이 서 있는 칠곡 땅도, 과거 전쟁의 와중에 ‘더는 물러설 수 없었던’ 경계의 땅이었다.
■ 시호재 & 시차
시호재&시차는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즐기는 게 최상이다. 손님들이 많은 주말이나 휴일이라면 개별실을 예약해 이용하는 게 만족도가 높다. 붐비지 않아도 함께 간 이에게 낭만적인 시간을 선물처럼 주고 싶은 경우에도 독립공간을 추천한다. 독립공간은 ‘자기만의 방’과 ‘침묵의 소리’ 두 종류. 자기만의 방은 리조트 객실 느낌이고, 침묵의 소리는 일본풍 다실(茶室) 분위기다. 2시간 예약제로 차나 음료 가격 외에 장소 사용료 3만 원을 더 받는다.
다부동 골짜기에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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