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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육연원민
작성일 26-08-2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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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기독교 국가인가
많은 사람들은 가장 기독교적 국가로 미국을 떠올릴 것이다. 미국만이 여전히 기독교가 시민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은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기독교 국가라고 공식적으로 표방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장 기독교적 국가일 뿐이다.
미국의 기독교 전통은 뿌리 깊다.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역사가인 알렉시스 토크빌은 1831년부터 1년간 미국을 방문한 뒤 저술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이 신생국가의 다양한 요소들 가운데 기독교의 독특한 위치를 부각시켰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기독교의 깊은 연관성을 언급한다.
그렇게 미국은 자국의 시민뿐 아니라 외지인조차 놀라운 종교성에 감탄하게 하는 사회를 건설했고, 현재도 서구 어느 국가보다 여전히 강력한 종교성을 정치 문화 사회 모든 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은 다문화 사회 속에서 갈등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미국은 서양에서 기독교가 포스트·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서 여전히 사회·문화와 방대한 관련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예이다.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종교성은 국민성을 넘어 역사와 함께해 온 국가 정체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미국인들의 국가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50년대에 와서야 활발해졌는데, 이를 주도한 인물은 하버드 대학의 페리 밀러였다. 미국에 정착한 최초의 주민들의 이주 목적이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임을 보았던 밀러는 오래된 문학 작품과 다양한 문서를 통해 청교도와 조너선 에드워즈를 재발견했다. 밀러를 필두로 미국의 시초를 기독교적 관。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비로소 청교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탄생한다.
미국 역사 속에서 청교도가 항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을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미국인들의 초기 역사에 대한 인식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1850)와 같은 작품들, 세일럼의 마녀사냥 같은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미국인들은 오랫동안 청교도들을 음울하고 억압적인 존재로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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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에 밀러 같은 학자들에 의해 청교도가 새롭게 부각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밀러가 미국 초기 역사를 연구하면서 미국 신학사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조너선 에드워즈의 재발견이다. 에드워즈는 자유주의자들의 등장과 함께 이미 잊혀진 인물이었다. 그의 후손들이 19세기 중반까지 연구를 꾸준히 이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변화하는 산업화, 도시화 사회에서 청교도의 정.이었던 칼뱅주의자 에드워즈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하지만 청교도들이 미국을 세웠고 그들이 미국의 정체성임을 주장하는 밀러에 의해 청교도의 마지막 후예였던 에드워즈의 1차 대각성운동과 미국 독립의 관계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이 세우실 ‘새 예루살렘’과 ‘새 도시’를 꿈꿨으며, 1차 대각성운동을 통해 뉴잉글랜드의 많은 사람들은 이 꿈이 실현돼가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러나 ‘미국은 기독교 국가로 시작했다’는 명제에 대한 반발도 존재한다. 데이비드 홀은 초기 식민지 사회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비기독교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초기 식민지 시대의 유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수없이 많은 마술 도구들을 발견하면서, 청교도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지만 절대적이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다수는 마술과 신비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말한다.
현재를 조명하는 이 글에서 미국 국가 정체성에 대한 재발견이 중요한 이유는 아직도 기독교 국가 미국에 대한 열망이 미국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미국 기독교는 더 노골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가. 한국교회가 방어적인 메커니즘을 가지고 교회를 지키고, 신앙을 지키고 성경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법안과 사회적 변화에 저항하고 있다면, 미국은 그들의 국가 정체성을 보존하고 미국을 ‘미국답게’ 지키고자 하는 그들만의 상황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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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그들이 생각하는 미국이 백인 복음주의인지 혹은 그들의 조상들이 생각했던 미국 같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탈교회 현상과 세속화
미국은 현재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종교 이탈을 경험하고 있다. 청교도의 열정으로 세워진, 그래서 그 기원부터 매우 기독교적이었던 미국 교회는 다양한 도전 앞에 놓여 있다. 미국은 세속화를 일찍 경험한 유럽과는 다르게 예외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마크 놀은 미국과 캐나다의 교회 역사를 비교하면서, 캐나다보다 미국 교회가 활성화된 이유가 정교분리의 시.이라고 진단한다.
19세기 초반 정교분리를 겪으며 치열한 생존 경쟁을 치른 미국 교회에 비해 캐나다 교회는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정교분리를 결정했고, 그것이 캐나다 교회가 안일했던 이유라고 평가한다. 로드니 스타크와 로저 핑크 역시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데, 미국 교회는 정교분리로 인해 다양한 교단들이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종교 시장을 형성했다고 평가하면서 그것이 미국 교회가 세속화를 일찍 경험한 다른 국가들과 다른 ., 즉 ‘미국 예외주의’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미국 교회는 경쟁력을 가졌다는 뜻인데, 이런 미국이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근래의 현상에 대해 가장 주목할 단어는 ‘탈교회화(dechurching)’이다. 목회자와 사회학자들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해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 가운데 4000만명이 현재 1년에 한 번도 가지 않는 상태가 됐다. 이것은 1,2차 대각성운동과 모든 부흥운동을 통해 이룬 부흥의 총합보다 더 큰 규모다. 거대한 규모의 탈교회화가 초래하는 문제는 다양하지만 근본적으로 기독교가 더 이상 미국 사회의 고정적 전제가 될 수 없다는 。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세속화와 미국의 세속화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다. 공통 현상은 ‘소속 없는 신앙(믿기는 하지만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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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무신론자가 된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며 전통적인 신앙의 요소들은 유지한 채 우선순위에서 교회가 밀려나고 있다고 학자들은 진단한다.
20세기 초반 근본주의와 현대주의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신학적인 노선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면, 지금 미국 교회가 경험하는 것은 문화의 재편 속에서 조용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탈이라는 .이 주목할 만하다. 사회학자 크리스천 스미스는 미국의 청년층을 조사하면서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신앙 개념을 소개했는데 ‘도덕적 치료 이신론(Moralistic Therapeutic Deism)’이라 했다. 스미스가 제시한 이신론은 밀레니얼 세대가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삶에 대한 분리를 보여준다. 이들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삶에 실제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으며 신앙을 갖는 목적은 행복과 자존감 증진으로 여긴다.
탈교회화는 사상, 사회, 문화의 변화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위기가 한 몫을 했다. 지난 20여년간 이어진 일련의 제도적 신뢰 붕괴 사건들은 탈교회화를 재촉했다. 소위 스타 목회자들의 권력 남용 스캔들을 비롯한 거대 교단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복음주의에 만연한 정치적 남성성과 기독교 민족주의가 새로운 세대에게 교회를 의심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제도화된 교회를 향한 근본적인 질문에 가깝다.
그런 。에서 여기 한국과 흡사한 지.이 있다. 1976년부터 가시화된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정치 참여는 2016년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심화됐는데, 이들이 갖고 있는 특정 지지 성향이 미국 젊은 세대에게 경험적으로 각인돼 버렸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과 데이비드 캠벨은 그들의 저서 ‘미국적 은혜’에서 미국의 젊은 세대에게 ‘종교적’이라는 표현은 곧 ‘보수적이고 정치적으로 특정 진영에 속한’이라는 이미지와 결합됐다고 주장했다. 그로 인해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조성됐을 뿐만 아니라,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적 함의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탈교회화가 가속화되었다고 분석한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부흥
그러나 이 같은 분석들이 전체 그림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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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기관인 바나와 퓨리서치는 다른 면이 존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조사는 젊은 남성들의 교회 출석과 성경 판매량이 늘고 있다는 흥미로운 그래프를 보여준다. 바나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밀레니얼들의 교회 출석이 베이비부머 세대를 앞질렀으며 이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현상이다.
이 현상을 단순하게 부흥으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미국 내 만연한 세속주의에 대한 피로감과 성 정체성에 대한 지나친 로비가 만들어낸 역효과로 여길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젊은 세대의 교회 출석이 전통적인 부흥운동의 방식과는 다르게, 새로운 미디어 즉 유튜브와 팟캐스트 등의 디지털 플랫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다. 미국 교회 안에는 작지만 새로운 형태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
전혀 다른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시민 종교에 가까운 미국의 문화적·전통적 기독교는 유례없는 속도로 해체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세대는 기독교의 유산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다. 호세 카사노바가 말한 것처럼, “세속화는 종교의 소멸이 아니라, 종교의 재배치(relocation)를 낳는다”는 것을 현재 미국 교회가 보여주는 셈이다.
위대함보다 선함으로
미국 교회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 모두의 처방이 다를 것이고 각각의 의견은 소중하다. 지금 미국의 여러 모습들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다. 자국 중심의 정책이 주를 이루며 인종차별이 오히려 심화되는가 하면 약자를 위한 정책은 후퇴했다. 이민과 유학이 까다로워졌고 특별히 해외 원조까지 극단적으로 줄이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받았던 소위 무능함과 혼란에 대한 비판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가 내세운 마가(MAGA) 슬로건이 만들어낸 지금의 모습 역시 지지자들의 열렬한 칭송과는 다르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면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위대하기(Great)보다 선하기(Good)를 원하신다. 위대한 미국(Make America GREAT Again)을 만드는 것보다 선한 미국(Make America GOOD Again)을 추구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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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도전과 희망
한국교회는 미국 선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했고 미국 기독교의 유산을 다수 계승했다. 열정적 부흥 운동과 선교사 파송, 학교와 병원을 통한 적극적인 사회 선교 같은 굵직한 유산들은 물론, 다양한 기독교 문화 예를 들어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가 가졌던 반가톨릭주의, 전천년주의 종말론으로 인한 예수 재림 갈망, 열정적 찬양 등 수없이 많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미국 교회의 지도자들을 흠모하고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의 정치 참여도 미국 교회와 비슷한 양상을 보여왔다. 그로 인해 한국교회는 양극화된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교회 안에서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무분별하고 과도한 정치적 참여는 교회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 기독교의 유산을 알게 모르게 이어온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 기독교를 넘어선다는 것이 단순히 한국 고유의 악기로 연주하고, 한복을 입고 예배를 인도하는 방식으로만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 기독교가 마주한 문제들을 우리 스스로 고민하며 풀어가야 하는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한국교회는 미국 복음주의의 성공 서사를 거의 완벽하게 흡수하고 실현했지만, 그 서사는 미국에서조차 흔들리고 있으며 한국교회 역시 미국이 경험하는 탈교회화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의 고유한 문제들이 있다. 분단과 전쟁의 트라우마를 비롯한 단기간에 이루어 낸 경제적이고 문화적 성공이 낳은 다양한 도전들, 세계 최저 출산율과 개인주의 등 미국 교회를 모델로 풀어갈 수 없는 문제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한국교회는 이런 도전들 앞에 정직하고 겸손하며 진지하게 서야 할 것이다. 설문 결과 속의 가슴 아픈 숫자와 그래프 앞에서도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음을 분명하게 믿는다. 이후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더 훌륭하게 교회를 세워 나가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갈 것을 소망하며 기대한다. 기독교의 본질은 언제나 복음으로의 회귀였다. 오늘도 복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이 시대를 세워가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 글을 마친다.
김하나 목사 (명성교회)
존재한다. 데이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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